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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東夷族)에 대하여 (역사5)

역사

by AllTogether 2024. 8. 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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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조인 동이족(東夷族)에 대한 실제적인 사실과 동이족이 이룬 업적 및 그 동안 잘못알고 있던 중국 대륙에 존재했던 국가를 세운 민족은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지, 지나(支那)족 혹은 화하(華夏)아니다 라는 사실일 역사 기록으로 확인하고, 화하족이 세운나라는 한(漢)나라 부터 송(宋), 명(明)등 몇나라가 안된다. 유전학적으로 우리민족은 화하족과 다르고, 일본인과 모계쪽으로 유사한 유전자가 확인된다

고대에 우리선조가 살던 지역

한국 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라시아 북방초원(Steppe)과 중국대륙 황하(黃河)부터 양자강까지의 화북 평원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야할것이다. 우리민족의 선조는 한반도에 거주했던 원주민도 있었겠지만,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파미르 고원에서 유라시아 대평원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대륙의 화북평원을 거쳐 한반도로 이주한 겨레(카자흐스탄 역사책에 케레이로 기록)족이다. 고조선 국가가 존재했던 7천년전~2천년전에는 황하와 양자강 사이의 화북평원에 거주하였고 이시기에 대한 이 지역에 동이족(東夷族)이라는 역사적인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 선조의 삶의 흔적에 대한 많은 유물과 기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선진(先秦) 시기 산동성 지역 ‘동이(東夷)’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당시 동이족에 관련한 자세한 기록을 연구한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상나라 시대 동이국가 분포지역 (김연주 박사 논문 참조)

위 지도에서 보듯이 현재 중국의 중앙 평원(화북평원)은 우리선조가 살고 있던 지역이었고, 관련 유물도 상당히 많이 출토되고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에 유물 출토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거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시대적 상황과 출토 유물을 분석해 보면 이 지역도 (고)조선이다. 현재의 만주지역을 (고)조선 지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화북평원도 (고)조선 강역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참고로 (고)조선은 연방체제의 정치체제를 갖고있었던걸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이 지역, 산동성(山東)성 임기시(臨沂)에 동이문화박물관(東夷文化博物館)을 건립하고 동이족의 4명의 위대한 군주로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치우천왕(蚩尤天皇), 순(舜)임금을 동이의 영웅이라고 전시하고있다.

산동성 임기시 동이문화박물관 전경

위에 전시된 4명의 영웅에 대한 개략적인 업적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태호복희씨(太皞伏羲氏):  《주역》(64괘)의 사상적 기초인 팔괘(八卦)를 창제하고, 문자, 혼인제도 및 姓氏개념을 창조 했으며, 주역의 64괘 개념이 현재의 컴퓨터 16진법의 개념 개발에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는 친구 요아킴 부베(Joachim Bouvet)가 보낸준 주역()  헥사그램 다이어그램을 기준으로 2진법 개발
  •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 산동성 곡부시) 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농정(農正)과 공정(工正) 관직을 설치하여 고대 농업 생산력의 발전을 도모했고, 천문을 관측하는 역법을 제정하고 다양한 악기도 발명하였다
  • 치우천왕(蚩尤天皇):  집을 만들고 방어와 병기 제작을 담당하였고, 신농의 말기에는 중국 본토에서 천왕이 되었으며, 후자에서 치우는 배달국의 제14대 환웅인 자오지환웅으로 등장한다.
  • 순(舜)임금: 하나라 이전 요순시대에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군주

황제헌원(黃帝軒轅)은 동이족

화하족이 본인 들의 조상이라고 우기는 황제헌원(黃帝軒轅)은 선비계열의 흉노족 계역의 동이족으로 알려졌고,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환관경본기 第三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 熊氏之所分, 曰少典, 安夫連桓雄之末, 少典以命, 監兵于姜水, (… 중략). 少典之別派, 曰公孫, 以不善養獸, 流于軒丘, 軒轅之屬, 皆其後也
  • 웅씨(熊氏)족에서 갈려 나간 후손 중에 소전(少典)이 있었다. 안부련환웅(8세) 말기에 소전(少典)이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군병을 감독했다. (… 중략) 소전(少典)에서 갈라진 파로 공손(公孫)이란 인물이 있었다.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해 헌구(軒丘)에 귀양가서 살았는데, 헌원(軒轅)의 족속이 모두 그 후손이다.

황제헌원이 동이족 이라는 사실은 2008 1 18 경향신문 "중국인의 조상 ‘황제’는 동이족었나"이라는 기사에서 요령성 박물관 전시실에 전시된 훙산문화와 오제전설’이라는 제목의 전시공간에 황제헌원(黃帝軒轅) 동북의 훙산문화(동이족의 문화) 대표로 전시되어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소호금천의 후손인 황제헌원을 김유신의 조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가야(加耶)도 김유신과 같은 가계로 기록되어 있다. 이부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신라 건국과정에서 별도로 설명하고자 한다.

  •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이르기를,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예여서 성(姓)을 김(金)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유신비(庾信碑)에서도 또한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少昊)의 자손이다.”라 하였으니, 곧 남가야(南加耶) 시조(始祖)인 수로와 신라〔왕〕는 같은 성이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

"夷"의 정의, 설문해자(說文解字), AD121년

한(漢)나라때 (121년)에 작성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나오는 東夷족에 대한 특징과 문화를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동이족인 공자가 춘추에서 동이족을 오랑캐로 규정하여 오랑캐 '夷'로 규정되었다.
  • 夷 【東方之人也 從大從弓】葢在坤地頗有順理之性。惟東夷从大。大人也。夷俗仁。仁者壽。有君子不死之國。按天大,地大,人亦大。大象人形而夷篆從大。則與夏不殊。夏者,中國之人也。從弓者,肅愼氏貢楛矢石砮之類也。以脂切。十五部。出車,節南山,桑柔,召旻傳皆曰。夷平也。此與君子如夷,有夷之行降福孔夷傳, 夷易也同意。夷卽易之叚借也。易亦訓平。故叚夷爲易也。節南山一詩中平易分釋者,各依其義所近也。風雨傳曰夷悅也者,平之意也。皇矣傳曰夷常也者,謂夷卽之叚借也。凡注家云夷傷也者,謂夷卽痍之假借也。周禮注夷之言尸也者,謂夷卽尸之叚借也。尸陳也。其他訓釋皆可以類求之。
  • ()’는 (동방의 사람이다. ‘큰 대()’와 ‘활 궁()’에서 유래)  사람은 대개 그 사는 땅에 따라서 성격이 결정된다오직 동이(東夷)만이 ‘큰 대()’에서 유래하였고큰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동이(東夷)의 풍속은 어질고(어질면 장수하므로군자가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생각컨데하늘은 크고 땅도 크며 사람도 역시 그 성품이 크다

설문해자 동이에 대한 해석

東夷 족 특성 및 종류 (AD 445년)

후한서에 기록된 동이족의 특성 및 주요 동이족 종류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동쪽에 사는 어질고 생명을 존중하며 유순하며 도리를 지키는 군자의 나라로 기록하고 있다.
  • 王制云: 「東方曰夷.」  夷者, 柢也, 言仁而好生, 萬物柢地而出.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 夷有九種, 發  三  曰畎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白 故孔子欲居九夷也. 
  • 「王制」에 이르기를 ‘東方을 夷라 한다’고 하였다. 夷란 根本이다. 夷가 어질어서 生命을 좋아하므로 萬物이 땅에 근본하여 産出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天性이 유순하여 道理로서 다스리기 쉽기 때문에 君子國과 不死國이 있기까지 하다. 夷에는 아홉 종류가 있으니,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孔子도 九夷에 살고 싶어하였다. (9개의 東夷족 언급)

後漢書, 卷八十五, 東夷列傳  第七十五,

공자(孔子) 東夷족이다

공자가 동이족(韓 민족)이라는 사실은 우리민족이 공자를 차지하기 위한 음모론적안 이야기가 아니라, 화하족의 사마천 사기의 공자세가에 공자가 죽기 7일전, 제자와의 대화에 기록된 내용으로서 공자 본인 입으로 본인의 출신이 은(상)나라라고 발언한 것을 말하는 내용이다. 이 블로그 뒷부분에서 설명되겠지만 상(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다. 대화 내용과 공자세가 원문은 아래를 참조하길 바란다. 그리고, 설문해자에 기록된 동이의 ' 夷'자를 오랑캐라는 의미로 바꾼 사람이 상나라 사람인 동이족 공자(孔子)이다.

  • 明歲, 子路死於衛. 孔子病, 子貢請見. 孔子方負杖逍遙於門, 曰賜, 汝來何其晩也? 孔子因歎, 歌曰ː“太山壞乎! 梁柱摧乎! 哲人萎乎!” 因以涕下. 謂子貢曰ː“天下無道久矣, 莫能宗予.

       - ... (생략) ... 천하에 道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구나. 아무도 나를 존중하지 않네

  • 夏人殯於東階, 周人於西階, 殷人兩柱閒.

       - 夏사람은 동쪽 계단에 빈소를, 周사람은 서쪽 계단에 빈소를, 殷 사람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렸다.

  • 昨暮予夢坐奠兩柱之閒, 予始殷人也.”

       - 지난밤에 꿈에서 양쪽 기둥 사이에 앉아 제사를 받았다. 나는 은(殷)나라 사람이다.

  • 後七日卒.

       - 7일후 공자는 세상을 떠났다

司馬遷 史記 孔子世家

공자 (孔子)의 춘추(春秋),  夷를 오랑캐로 규정

노나라의 사관이 기록한 춘추를 공자가 임의로 편수 작업을 한 책으로 도덕적인 면에서 엄격한 점을 따 저술되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 '춘추필법'이다. 공자는 본인이 편수한 춘추(春秋)에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오랑캐 夷를 설명하고(華夷之辨), 화하족과 동이족을 구별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후, 설문해자에 기록된  "어질고(), 군자가 많으며, 땅도 크며 사람 성품도 크다는 뜻의  夷"가 "오랑캐 夷"로 변경하여 사용되었다.

  • 人就是夷 隨着時代的發展 到了春秋時期 被征服之夷在服役 且同化後稱之爲 "人" 未被征服的外族爲夷 
  • 사람 '인(人)'은 오랑캐 '이(夷)'와 같은 글자인데. 시대에 따라 발전해서 춘추시대에 이르면 정복당한 오랑캐 '이'가 복역을 하고 동화가 된 뒤 사람(人)이 되나, 아직 정복되지 않은 외족 이방인 '이'는 오랑캐이다.

공자가 본인의 동이족의 신분을 숨긴 이유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이덕일 역사 TV를 참조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 공자는 자신의 출신 성분이 동이족 인것을 잘알고 있었다.
  • 은나라가 주나라에 무너지자 공자는 주나라에 대해서 많은 반감을 갖게된다
  • 그러나, 공자가 남궁성숙과 함께 낙양을 방문하고 주나라를 섬기며 대의에 따른다는 존주대의(尊周大義) 정책 수립하게 된다 (변절)
  • 그리고, 제후국(주로 동이족의 국가)을 돌아다니면서 주나라를 인정하는 존주대의(尊周大義) 정책을 펼치자고 설득
  • 이러한 설득작업을 하면서 동이족을 오랑캐로 규정 (이후 夷가 오랑캐 뜻울 갖게 됨)
  • 그러나 제후국은 공자의 말을 수용하지 않고, 공자는 혼자 따돌림 받는 신세로 전락
  • 마지막 죽을때는 쓸쓸히 혼자 죽으면서 본인 동이족 임을 고백하고 죽음

공자가 동이족을 오랑캐(夷狄)라고 비하하다. (사기 권47, 공자세가 제17)

제후국인 제나라를 방문하여 주나라를 존경하는 대세를 따르자는 존주대의(尊周大義)를 설파하는 자리에서 열린 연회에서 동이족의 음악을 연주하는 동이족 음악을 중단케 하고 이 무희들을 쫓아내는 상황이 공자세가에 기록되어 있다. 점령한 주나라에대 최대의 아첨을 하는 공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 定公十年(B.C 500) 春, 及齊平. 夏, 齊大夫黎鉏言於景公曰:「魯用孔丘,其勢危齊。」乃使使告魯為好會,會於夾谷。魯定公且以乘車好往。孔子攝相事,曰:「臣聞有文事者必有武備,有武事者必有文備。古者諸侯出疆,必具官以從。請具左右司馬。」 定公曰:「諾。」具左右司馬。會齊侯夾谷,為壇位,土階三等,以會遇之禮相見],揖讓而登。獻酬之禮畢,齊有司趨而進曰:「請奏四方之樂。景公曰:「諾。」 於是 旍旄羽袚矛戟劍撥鼓噪而至。孔子趨而進,歷階而登,不盡一等,舉袂而言曰:「吾兩君為好會,夷狄之樂何為於此!請命有司!」 有司卻之,不去,則左右視晏子與景公。景公心怍,麾而去之。有頃,齊有司趨而進曰:「請奏宮中之樂。」景公曰:「諾。」 優倡侏儒為戲而前。孔子趨而進,歷階而登,不盡一等,曰:「匹夫而營惑諸侯者罪當誅!請命有司!」有司加法焉,手足異處。景公懼而動,知義不若,歸而大恐,告其羣臣曰:「魯以君子之道輔其君,而子獨以夷狄之道敎寡人,使得罪於魯君,為之奈何?」 有司進對曰:「君子有過則謝以質,小人有過則謝以文。君若悼之,則謝以質。」於是齊侯乃歸所侵魯之鄆、汶陽、龜陰之田以謝過。
  • ... (생략) ... 이족(夷族)의 춤과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옵소서.」  경공(景公)이 승낙(承諾)하니 깃발, 새의 깃털 장식(旄羽)으로 치장한 무희가 창(矛戟)과 검(劍)을 쥐고서 북을 치며 소란스럽게 나아왔다. 공자(孔子)가 빠르게 달려 나와 계단을 올라가되 마지막 계단은 오르지 않고 소매를 들어 [두 군주(兩君)께서 기쁘게 만나셨는데 어찌 이곳에 오랑캐 음악(夷狄之樂)이란 말입니까 !  청하건데 관리에게 명령을 내리소서.]라고 했다. 관리가 (무희들을) 쫓아내었으나 가지 않고 좌우의 안자(晏子)와 경공(景公)을 바라보았다.  ... (생략) ...
사기 공자세가 14, 15페이지

사기 공자세가 16, 17페이지

동이족으로 구분되는 고대국가 

구당서() 동이열전(傳第一百四十九) (AD 945년 발간)을 보면 고대 국가의 민족구성으로 동이족의 나라를 정의한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우리 민족이 알고 있듯이 고리, 백제, 신라, 왜, 일본을 동이족의 국가로 정의하였다. 왜와 일본을 별도의 나라이고, 우리민족과 동일한 동이족의 국가이다. 구당서(동이열전(傳第一百四十九)에 기록된 동이족이 건국한 나라이다.

  • 東夷족의 나라는 아래와 같다
  • 高麗, 百濟, 新羅, 倭國, 日

구당서 동이열전 (列傳第一百四十九上)의 동이족의 국가

東夷족 풍습

  • 상투: 장가가면 머리를 묶어 상투를 튼다
       − 장가 안 갔으면 머리에 두건을 쓰다가, 장가를 가면 상투를 튼다 (1123년 송나라 사신, 고려도경)
  • 옷깃: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는 좌임(左衽)
       − 활을 쏠 때 옷깃이 걸리지 않게 한다. 이 풍습은 스키타이의 풍습
       − 조선시대에서는 우임(右衽)으로 변경. 활 쏘는 오랑캐는 좌임이라, 문화적으로 우월한 조선은 우임
  • 궤좌,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 찬 바닥에 앉는 방법
       − 온돌이 발명되면서 조선에 와서 양반다리 앉은 자세로 변화
  • 편두(扁頭, 褊頭, 偏頭, Flat Head)
        − 뒤가 납작한 머리
  • 순장, 지배계급의 환상, 죽어서도 살아 생전의 생활을 영위

        − 부여, 신라, 가야 때까지 지속(AD 7세기)

동이족은 해뜨는 방향과 관련

조선아사달(아침 땅·아사는 아침, 달은 산·)’의 한자 번역이다. ‘아사달은 순수한 고조선말 나라이름이었다. 산동반도 대문구(大汶口) 文化 유적에서 상형문자가 발견되는 데 이 문자가 '아사달'을 뜻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산동성 거현 능양하에서 출토된 아사달 문양

이 아사달 문양아 상형문자 금문을 거쳐 현재의 아침 '단(旦)'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아침 '단'과 동이족의 대표 아사달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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